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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내 삶에 ‘킥!’을 외치다”

by kwhotline 2016. 7. 22.

“내 삶에 ‘킥!’을 외치다”

- 한국여성의전화 <페스티벌 킥>에 다녀오다



황나리 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언제든지 ‘킥!’을 외쳐주세요.”


내 공간이라는 느낌이 주는 아늑함은 쉽게 찾기가 어렵다. 일상의 대부분에서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를 막아서는 폭력들에 무뎌질 무렵,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주최한 <페스티벌 킥>에 가게 됐다.  7월 16일 토요일에 열린 이 행사는, <연애>라는 주제로 토크쇼와 콘서트 등을 자유로운 이야기를 통해 여성들이 생각과 고민을 함께 나누며 연대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행사와의 큰 차이는 <페스티벌 킥>은 여성만 참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참가자뿐 아니라 패널, 전체 스텝모두 여성이었다. 행사장 문을 열었을 때 느꼈던 낯선 감정은 실은 한번도 여성들이 점유한 공간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당혹감과, 동시에 남성들로 가득 찬 세상이 너무나 익숙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여성들만 입장이 가능한 이유는 뭘까.  여성들이 이 공간을 점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행사를 시작하면서 한국여성의전화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행사 중이든 상관없이, 언제든  ‘킥’을 외쳐달라고. 단지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내 의견은 “프로불편러”로, “예민한 여자”로 해석되고 묵살된다. 이러한 경험들이 오랫동안 몸에 각인된 상태에서 ‘킥’을 외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 말이 무시당하면 어떡하지’, ‘내 생각이 틀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행사가 진행되면서 점차 깨어짐을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킥”을 외치는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이 공간이 울린다. 행사가 끝날 때쯤엔 자유롭게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는, 잊고 있던 나를 만나게 됐다.



 제2회 페스티벌 킥 최강킥녀 선발대회



제2회 페스티벌 킥 부스



부스들 다니느라 샤샤샤


우와! 대박!” 환호성에 돌아보니 “최강킥녀 선발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망치를 내리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때마다 함께 환호를 지르는 소리였다. 신나는 망치게임을 시작으로 부스를 둘러봤다. 첫 번째 부스에서는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회원가입과 서명운동을 받고 있었다.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가해자의 엄중 처벌 촉구에 대한 내용과 스토킹 방지법 제정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고통 받고 죽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이 행사가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데이트공작소>에서는 ‘데이트up데이트’ 앱으로 고민 상담소가 진행되고 있었다. ‘답정킥’ 코너에서는 연애에 대한 고민에 포스트잇으로 자유롭게 연애상담과 답을 내리는 시간을 가졌다. 데이트폭력에 대한 여러 사례를 보면서, 데이트폭력이 연애라는 관계에서 굉장히 일상적으로 파고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짝반짝하고 예쁜 색들에 끌려 들어간 곳은 <은하선 토이즈>였다. 다양한 모양과 색의 섹스토이가 판매되고 있었다. 직접 만져보고 설명을 들으면서 섹스토이라는 이름에 왜 ‘토이’가 들어갔는지 알 것 같았다. 섹스가 즐거운 것이라는 것과 그것이 타인에 의해서가 아닌 스스로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주는 해방감이 있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부스에서는, 책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내용에 충실하게, “빻은 소리”하는 답답한 말을 물리치는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건 진짜 페미니즘이 아니야”, “이제 여자가 약자도 아니고” 게임을 하고 싶어서 기다렸던 나도 말문이 턱턱 막혀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느낌이 들었다. 나올 때 책 두 권을 사서 나왔다. 하나는 내 것, 하나는 친구 것. 우리에겐 모두 언어가 필요하니까. 


<마음을 그리는 낙서> 부스에서는 그림작가가 직접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그려주었다. 찬찬히 한 사람씩 진행된 이 부스는 예약제로 진행되었다. 행사들이 진행될수록 부스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아주 많았고, 낯선 사람들과 말도 섞고 함께 게임을 하면서 이 공간이 점점 익숙해졌다.



제2회 페스티벌 킥 부스




물고기는 자전거가 필요 없다 : 토크쇼1 전희경: <여전히 우리에게 “오빠는 필요 없다”>

 

첫 번째 토크쇼는 여성학자 전희경의 <여전히 우리에게 “오빠는 필요 없다”>라는 주제로 시작했다. 페미니스트 나혜석의 ‘이혼고백서’를 시작으로 축첩제 폐지운동, 가족법 개정운동, 호주제 폐지운동 등 과거 여성들의 투쟁 역사는 현재의 싸움을 지속하고 있는 우리들의 과거이자 미래 모습이기도 했다. 나 또한 과거의 그녀들처럼 현재의 폭력에 굴하지 않고 맞설 것이라 다짐했다.



제2회 페스티벌 킥 토크쇼 1부



“남자 없는 여자는 자전거 없는 물고기와 같다”.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Marie Steinem)이 한 이 말은 어떤 뜻일까? 전희경 강사는 “자전거가 물고기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듯, 여성에게 남성이 없다는 것은 여성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여성과 남성을 “필연적 관계”로 여기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남성이 없는 여성의 공간들은 무언가 부족한 공간처럼 인식되곤 한다. 전희경 강사는 1996년에 이화여대에서 벌어진 고려대 집단성폭행 사건과 2016년의 숙명여대 페이스북 사건을 연결한다. 1990년대 고려대 남학생들이 ‘여자들만 있는 공간이 무슨 재미가 있겠냐’며 몇 년간 이화여대 축제에 쳐들어가 학교를 짓밟고 여성들의 질서와 공간을 파괴했다. 2016년 숙명여대 페이스북에선 남학생이 "남자들은 죽어도 가기 싫어할 것 같은데 여자들은 어떤 이유에서 여대를 지원하나요?” 라는 막말을 해 화제가 됐다. 이처럼 여성들만이 있는 공간이 결핍되어있다는 편견, 여성과 남성이 필연적으로 함께여야 한다는 이성애 중심적 강박,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존재한다. 


“네가 여자로 보여”, “난 원래 여자였어”.

전희경 강사는 페미니스트 모니크 위띠그(Monique Wittig)의 “여성을 만드는 것은 남성과의 특정한 사회관계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여성과 남성이라는 것은 생물학적 범위가 아닌 정치적 범주이자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범주임을 설명한다. 그 예로 한 남녀관계의 고백 상황을 묘사한다. “네가 여자로 보여”라는 남자의 로맨틱해 보이는 고백은, 남자에게 이 여성이 “여성”으로 받아들여진다는 표현이다. 전희경 강사는 여성은 “남성과의 특정한 관계”로 정의될 때 “남성에게 여자로 보인다는 승인을 통해” 여성이 된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문득 주위를 둘러본다. 처음 행사장에 입장했을 땐 같은 성을 가진 단일한 여성들이 모여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강연을 들으면서 각자 자기만의 색을 가진 “다양한 여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다양한 여성들을 오직 남성과의 관계라는 허약한 끈을 통해 ‘여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 한 보따리 풀고 가세요 : 토크쇼2 란희, 김순남, 홍승은: <킥녀들의 집단지성 토크쇼>


2부 <킥녀들의 집단지성 토크쇼>에서는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송란희의 진행을 중심으로, 인문학카페 36.5도의 홍승은과 여성학자 김순남이 패널로 함께 했다.  <페스티벌 킥>을 신청할 때 여성들의 고민을 함께 받았는데, 이 코너에서는 그 중 몇 가지 사연을 골라 함께 패널들과 관객이 함께 고민을 나눠보는 시간이었다.

 


페스티벌 킥 토크쇼 2부


“의자에 몸을 맞추지마”

애인에게 자신을 맞추고 있는 사연이 있었다. 상대를 사랑하면 그에게 자신을 맞춰야 하는 걸까? 김순남 선생님은 깊은 한숨과 함께 “의자가 불편하면 의자를 바꾸거나 의자를 안 써야 하는데, 의자에 몸을 맞추고 있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리고 “자신이 왜 상대가 불편한지, 이것이 사랑하는 감정인지, 착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슬픈 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에게 질문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억 속의 그 사람과 싸우고 있다”

데이트폭력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하는 여성의 사연이 있었다. 사연을 보며 공감과 걱정의 목소리들이 나왔다. 김순남 패널은, 피해자가 쉽게 가해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함께 공유했던 친밀감과 좋은 기억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기억 속의 그 사람과 싸우고 있다”고 표현한다. 가해자와 자신이 사랑했던 다정했던 그 사람과는 분리를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자신이 폭력을 경험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면서,  사회에서 표현하는 폭력의 피해자 이미지가  수동적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홍승은 패널은 데이트폭력에 있어 주변사람들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을 사례를 들어 이야기했다. 이처럼, 데이트폭력은 피해자가 스스로 헤어나오기 힘들다. 그렇다면 주변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관객석에서 “피해자의 피해 사실들에 대해 함께 기록하기”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 외에도 패널들과 관객석에서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연대에 대해 함께 고민하였다.


 

페스티벌 킥 토크쇼 2부



“연애와 가족만은 신성한 것? ”

<페스티벌 킥>의 주제가 ‘연애’이기 때문에, 비혼여성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다. 연애라는 주제 속에서 비혼, 기혼, 연애, 비연애, 동성애, 이성애, 무성애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공존한다.  그래서 이성애중심적인 질문들에도 패널들의 이야기는 결코 한 방향으로 닫혀있지 않았다.  데이트폭력에서 연애와 결혼으로 이야기는 점차 확장됐다. 김순남 패널은 결혼에 대해, 인생의 경로는 다양하며 “규범이 강력하고 정상적인 것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환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비혼으로 사는 것이 결코 자유로움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며, 요즘 비혼인 사람들이 부모를 돌보는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홍승은 패널은 가족이데올로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회의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면서, 유독 연애나 가족만은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신성한 것이 되었을 때 그 안에는 폭력도, 고통도 없다는 환상 속에서 머물게 된다. 이는 가족과 연애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드러내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이다. 홍승은 패널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결혼, 연애라는 갇혀있는 관계를 확장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인생은 내 꺼야”

관객석에서 이런 질문이 많았다. 여성혐오가 심한 이 세상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야 하냐고. 김순남 패널은 이 질문에 “어떤 남자를 만나서 내 인생이 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며 그 의미를 꼬집는다.  “상대에게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상대에게 권력을 많이 주는 것”이란 이야기와 함께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남자 때문에 인생이 바뀐다’는 말이 어색하게 다가오지 않았던, 내 인생은 내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제2회 페스티벌 킥 콘서트, 맥주파티



“다시 일어나 괜찮아”: <콘서트> 정민아, 소울트레인


처음에는 타인이었던 사람들이 행사가 끝을 향해가면서 한 테이블에서 저녁을 같이 먹고 공연에는 함께 춤을 출정도로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특히 옥상콘서트는 앞선 토크쇼와 행사를 통해 느꼈던 것들을 음악을 들으면서 정리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모던가야그머 정민아는  <고래공포증>, <작고작게> 등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려주면서 노래에 담긴 자신의 경험들을 이야기했는데, 그 중 <서른세살 엄마에게>라는 노래에 대한 한 소절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울 어머니 지금 내 나이 때 나를 낳았지. 그리고 9년 뒤 아홉 살 나를 데리고 수리산 한증막에 갔어(…) 구 년뒤 내가 다시 여길 온다면 그때 엄마의 세월을 이해할까” . 두 번째 공연은 소울트레인의 무대였다. 공연이 이어졌고 열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미련>, <A> 등 많은 곡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특히  “다시 일어나 괜찮아. 내일은 다른 사랑이 다른 하루 올 거야”라는  소울트레인의 노래 <A>에서는 눈물이 나기도 했다.




제2회 페스티벌 킥 콘서트




누구도 내 인생을 통제할 수 없다는 위로


행사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 마음 한켠에 맴도는 말이 있다.  “내인생이 누구를 만나서 이렇게 됐다고 말하지 않기를” 바랬다는 김순남 패널의 이야기였다.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한 삶에서 “누군가가 내 인생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이 내게 위로처럼 느껴졌다.  나를 자꾸 막고 있는, 이 사회에 느끼는 무력감과 두려움은 내가 스스로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기”를 멈추게 했다. 이번 <페스티벌 킥>에서 ‘킥’을 외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던 경험은, 어떠한 억압이있어도 누구도 나를 통제할 수 없다는 용기뿐 아니라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연대를 느끼게 했다. 이날을 기억하면서 오늘도 일상에 ‘킥’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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