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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어떤 상담보다 치유가 된 교육

by kwhotline 2016. 7. 21.

어떤 상담보다 치유가 된 교육

한국여성의전화 상담원교육 후기


한상희 한국여성의전화 회원


3월 15일부터 5월 20일까지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과 여성상담전문교육(가정폭력전문상담원교육)을 받았다. 화수목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3개월 동안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을 100시간, 가정폭력전문상담원교육을 100시간 받아 총 200시간을 공부했다. 일 년 사계절 중 봄을 가장 목 빠지게 기다리고, 매해 봄날에 하루도 놓치지 않고 꽃들이 피는 것과 나뭇잎이 자라는 것을 보며 인생을 찬탄하고 음미하는 내가 그 좋은 3,4,5월에 강의실에만 있기를 선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가장 두려운 문제이자 직면하기를 마지막으로 미뤄뒀던 문제인 ‘성’ 문제를 외면하지 않기로 지난해부터 마음을 먹었는데 더 이상 나중으로 넘기고 싶지 않아 교육을 신청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교육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초반에는 여성학 개론부터 시작해 성폭력, 성희롱(아동, 장애인, 친족, 아내, 십대, 성적소수자, 이주여성 등), 성매매, 가정폭력 등에 관한 강의와 많은 사례들에 대해 들었다. 외면하고 안 보려했던 일들을 꼼짝없이 들여다보게 되면서 많이 울기도 하고, 마음이 아파 분노가 일기도 했다. 어떤 때는 밀도 높은 강의와 쏟아지는 사례들이 너무 힘들어 쉬는 시간마다 나와 북한산도 보고 갓 피기 시작하는 꽃들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대한 통념을 가진 채 교육을 받았던 나는 교육을 들을수록 그 통념들을 씻어내며 여성주의 관점으로 새롭게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폭력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1박 2일간 진행되었던 숙박 교육 때는 상담 사례를 각색하는 역할극도 하고, 수요시위를 준비하며 그림도 그리고, 노래에 맞춰 율동도 배우고, 여성폭력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의식향상집단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였다. 숙박교육 이후 난생 처음 갔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선 25년을 그 자리에 계셨던 정신대 할머니를 뵙고 눈물을 쏟기도 했다. 교육에 참여해 여성주의 시각을 가지게 될수록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죄책감이나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마음이 가벼워지며 새로운 희망도 가지게 되었다.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이 끝나는 마지막 시간에 한 교육생이 ‘그동안 상담을 받으러 많이 다녔는데, 어떤 상담보다 치유가 많이 된 교육이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울컥하며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마치 여고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신나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빡세게 나의 통념들과 싸우며 나의 상처들을 돌보고 같이 흘린 눈물들이 어느 교육이나 상담에서보다 더한 치유를 받았다.   


상담원교육이 끝난 후 상담원심화교육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교육과정 중에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있는 전화상담 공개 슈퍼비전을 참관했다. 슈퍼바이저는 18년 동안 여성의전화에서 여성주의 상담을 해온 분이었다. 슈퍼비전을 받는 선생님이 처음임에도 차분히 임하시고 슈퍼비전 후에 느낌을 나누는 자리에서 서로 격려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전화상담 참관 후에 첫 상담 전화를 받았다. 내담자의 말을 잘 들으며 모르는 것은 필담으로 상담원 선생님에게 묻고, 또 진짜 모르겠는 것은 기다려 달라하고 조언을 들은 후에 다시 내담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 했다. 20여분의 상담을 마치고 상담원 선생님과 일지를 같이 작성하며 이런저런 조언을 들으니 그제야 교육 받았던 것들이 생각이 났다. 아~ 마침내 첫 전화 상담을 받아냈다.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 반은 해낸 셈이다. 전화상담 자원활동을 할까 말까 계속 고민하고 갈등했는데 또 한발 앞으로 간 내가 대견했다. 




올해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 한 일은 여성의 전화에서 교육을 받은 것이다.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알게 되어 내 시야의 폭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아직 교육을 안 받으신 분이 계시다면 내년엔 꼭 교육을 받으시길 권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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