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마이 프렌즈>, 혐오와 폭력은 되풀이된다

[TV리뷰] 되물림되는 폭력... 나 하나 참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이정희 미디어평론가


※ 이 기사는 <미디어스>, <오마이뉴스>에도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지난 26일 방영된 <썰전> 168회에서는 <주간 떡밥>으로 강남역 살인 사건을 다뤘다. 패널인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는 모두 이 사건에 대해 심심한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사건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은 달랐다. 


전원책 변호사는 자신이 맡았던 이와 유사한 사건의 예를 들며 우리 사회가 방기한 '조현병' 등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가 '강남역 살인 사건'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그에 반해 유시민 작가는 '여성'을 최후의 식민지로 여기는 '남성' 일반의 전근대적인 인식이 결국 강남역 살인 사건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유시민 작가에 대해 전원책 변호사는 반대한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인식들이 우리 사회 '남'과 '여'의 대립을 조장하며 본질을 왜곡한다는 뉘앙스의 입장을 밝혔다. 그런 전원책 변호사의 의견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짚는다. 그 '남성'은 여성이 들어올 때까지 여섯 명의 자신과 같은 '남성'들을 그냥 보냈다고. 물론 그 '남성'은 정신적 질환으로 인해 왜곡된 인식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병적 인식의 근저에는 바로 우리 사회 뿌리깊게 박혀있는 '여성'을 남성보다 낮잡아 보는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덧붙인다. 우리 남자들은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이나, '차별'을 잘 모른다고.



남자들은 모르는 최후의 식민지 여성




▲전형적인 꼰대. 그들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무감각하다.ⓒ tvN


전원책 변호사도 그랬다. 세상이 이전과 달라졌다고. 요즘은 사회적으로 여성들이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데 왜 새삼스레 '여혐'이니, 차별이냐고. 유시민 작가의 '모른다'는 말 조차 선뜻 수긍하기 힘들어 하는 전원책 변호사의 표정은 어쩌면 바로 우리 사회 표준의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일부의 사람들은 오히려 억울해 하며 강남역에 모여든 여성들에게 어떤 잣대를 들이대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원책 변호사의 수긍하기 힘든 표정에서부터, 최근 강남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갈등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에 얼마나 뿌리깊게 여전히 '차별'이 박혀 있는가를 증명하고 있다.


28일 <디어 마이 프렌즈>는 바로 그 오늘날 '여혐'으로 드러나고 있는 우리 사회 최후의 식민지 여성 차별의 역사를 짚는다.


<꽃보다 청춘>의 네 할아버지 중 한 분으로 '구야 형'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새삼스레 노년의 인기로 회춘한 신구 선생이 <디어 마이 프렌즈> 정아 이모의 남편 김석균으로 분한다. 


하지만, 넉넉한 웃음의 배려심이 넘치던 '구야 형'은 온데간데 없이, 동네방네 시끄럽게 아파트 현관 문을 발로 차며 마누라 이름을 불러 제끼는 김석균씨는 이 시대의 전형적인 꼰대 할아버지다. 


'구야 형'을 좋아했던 시청자들조차 김석균씨의 신구 선생을 쉽사리 수긍할 수 없는 가부장이다. 문을 제때 안 열어주는 아내, 밥을 제때 안 차려주는 아내, 이러저러한 그의 요구에 딱딱 맞춰 주지 않는 아내에게, 아니 요구를 제때 맞춰 주더라도 그저 집에서 하는 없이 밥만 축내는 여편네라고 입에 달고 산다. 


말뿐이 아니다. 늦게 들어오는 아내 문도 안 열어주는 식으로 '실천'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미 드라마에서 드러나듯이 김석균 노인의 아내에 대한 태도는 그가 한평생 견뎌온 트라우마의 방출이다. 


중졸 학력으로 고졸 아내와 결혼한 컴플렉스에서부터 사회적으로 늘 못배운 것으로 인해 겪은 수모 등이 자신의 '안사람'인 아내에게 쏟아부어지는 것이다. '내' 사람, 가장 만만한 사람, 바로 그의 아내가 그의 트라우마와 사회적 소외의 '배설지'가 된다.


그런 남편을 아내 정아 이모(나문희 분)는 인내해왔다. 그리고 평생 가족들 뒷바라지만 하다 이제는 요양 병원 신세가 된 친정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10억을 모은 남편이 자신을 세계 일주 시켜줄 것만을 고대하며 모든 모욕을 견뎌왔다.



가부장, 그 '폭력'의 역사 



▲부부의 문제는,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tvN


하지만 6회, 드디어 가족에게 드러난 정아 이모 큰 딸의 가정 폭력으로 인해, 정아 이모 부부의 일이 그저 '부부'만의 일이 아닌, '내림'이 되는 역사였음을 드라마는 밝힌다. 


즉 어린 시절 석균이 일하던 공장 사장 아들에게 추행을 당했던 순영은 사랑의 힘으로 그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남편에게 그 사실을 고백했고, 그로 인해 결혼 생활 내내 '골병'이 들도록 '폭력'에 시달려 왔다.


그러나 어린 시절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했을 때 아버지가 보였던 '기집애가'라는 모멸적 반응, 거기에 자신 못지 않게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온갖 시달림을 받으면서도 참아내는 어머니를 보며, '가부장적' 기제를 내재화했던 것이다. 


어머니가 그랬듯이, '나 하나만 참으면'이라는 의식으로 십수년을 폭력으로 견뎌왔다.


결국 딸의 가정 폭력으로 드러난 게 정아 이모네만이 아니다. 평생을 남편에게 얻어맞고 살다, 아들이 장애인이 되자, 그때서야 '폭력'에서 벗어난 난희 모 오쌍분 여사(김영옥 분)네도 만만치 않다. 


엉뚱하게 절친인 영원(박원숙 분)에게 화풀이 하는, 난희 남편의 '사랑'을 빙자한 집 안방에서까지 마다하지 않은 외도는 어떤가. 남편을 벽장 속에 가둬죽였다는 오명을 뒤집어 쓴 희자(김혜자 분)가 평생 견뎌야 했던 남편의 바람끼는 또 어떻고.


사실은 그 공장 사장 아들을 두드려 팼었고, 이제 또 사실을 알게 되자 사위를 찾아가 패악을 부렸다지만, 그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팔자 좋은 여편네와 딸들이 견뎌온 시절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제는 산소통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오쌍분 여사 남편이 제 아무리 아내바라기를 해도 아내 오쌍분 여사의 시선은 쉬이 남편에게 돌아갈 수 없다. 남편의 그늘에서 살아온 김희자 여사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늘 위태롭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결론이 결국 아름다운 가족애로 마무리될 지는 몰라도, 그녀들이 지난 세월 견뎌야 했던 '가부장'이란 이름의 정신적, 육체적 폭력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남편에게 맞은 아내가 겨우 경찰서에 찾아가면 '가정' 내 문제라고 되돌려 세우는 세태가 아직도 크게 바뀌지 않는 세상에서, 왜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여성으로 종종 위협을 느끼며, 모멸감을 견뎌야 하는 세상에서 거울 앞에선 할머니들의 얼굴에 새겨진 '가부장'이란 이름의 문신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여전히 '모르거나', 심지어 '혐오'하는 세상이 이를 반증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블로그 이미지

한국여성의전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