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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연애라는 이름의 자기감옥, 나는 과연 자유로운가

by kwhotline 2016. 7. 4.

연애라는 이름의 자기감옥, 나는 과연 자유로운가

- '관계의 제도화를 넘어 사랑하기' 강의를 듣고


김나율_한국여성의전화 기자단





우리는 타인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또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런 주기적인 만남을 지속할수록 서로에 대한 호감은 점차 높아진다. 어느 날은 손을 잡고 어느 날은 키스하고 또 어느 날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연애를 한다.’라고 부른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고, 운명처럼 서로를 만났다고 생각하며 이 연애가 완전한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연애는 과연 진정한 연애일까? 


한국에서는 연애하는 사람과 연애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가 존재한다. 연애하는 사람은 행복한 상태로, 연애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하고 공허한 상태로 나누면서 개인의 자기결정권까지도 연애라는 이름으로 가둔다. 연애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기준 자체가 되었고 자기계발로 연결되는 형태가 되었다. 사회는 연애를 안 하는 자를 불행 속에 가두며 가차 없이 무너뜨린다. 


연애방법론에 대한 책도 무수히 쏟아져 나온다. 어떤 책은 좋은 남자, 좋은 여자를 만나는 방법으로 좀 더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자신을 가꿔서 더 아름다워지고 멋져지면 된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연애 시장에서 특히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지 못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남녀의 관계방식에서 아름다움은 자기관리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 비난의 화살로 작용한다. 한국의 연애 시장에서 여자의 나이는 어리고 예쁘기까지 해야 한다는 게 불변의 법칙처럼 따라다니며 여성의 자존감을 들쑤신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멋지게 농익어가는 ‘와인’으로 표현하지만, 여자는 20대 중반이 넘어가면 ‘꺾였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여자의 나이를 표현하는 말 중에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있다. 이 말은 24살까지는 잘 팔리지만 25살부터는 잘 팔리지 않는 케이크처럼 여자도 25살부터 연애시장에서 잘 나가지 못한다는 뜻을 담은 비하 용어이다. 이렇게 어린 여성 선호현상이 극심해진 상태에서 남성은 한 살이라도 어린 여성과 연애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여성을 향해 ‘김치녀’ 라면서 가차 없이 비난한다. 비난의 근원적인 이유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남성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연약한 존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외모지상주의가 연애에서도 작용하고 어린 나이와 아름다움을 직결하기 때문이다. 여성을 유약한 존재로 보고 나이 어린 여성을 조종하려는 심리가 한국 사회 전반에 깔린 이상 동등한 연애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연애가 아닌 결혼은 다를까? 부부싸움으로 파경 직전까지 이른 부부를 돕는 프로그램은 부부가 서로 지녀야 할 책임을 아내에게 모두 전가한다. 아내는 결국 자기관리 차원이라는 명목으로 심리치료부터 성형수술, 다이어트까지 감행한다. 아름다워진 아내를 통해 부부관계가 다시 원만해지는 것이 프로그램의 항상 똑같은 결말이다. 여성이 치열하게 아름다워져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관점은 자기결핍을 강화하며 완벽하게 호감을 살만한 존재가 되려는 생각은 사랑하는 관계와 양립할 수 없게 한다. 여성만이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껴져야만 하는 연애는 그 자체로 이미 손상된 관계이며 여성에게만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가 유지될수록 여성인권은 떨어진다.


우리는 성장하는 존재다. 누구나 사랑에 실패할 수 있고 상대와 싸울 수 있으며 사랑에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자라는 것이 당연하다. 연인은 다양한 이유로 인해 언제나 헤어질 수 있다. 애초에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만났으니, 헤어지는 것 또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랑이 나의 존재가치 자체를 증명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성은 연애하면서도 몸의 가치를 증명 받고 나이를 심판받으며 살아간다. 


이제는 연애를 위한 연애를 할 때가 아니라 자신의 자아를 살피고 다양한 감정을 경험해야 하는 자유에 대해 꿈꿔야 할 때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해진 상태로 지낼 수 있는 연애가 필요하다. 우리가 싸우고 힘들어하는 건 내가 더 사랑하면 해결될 일이라는 생각, 내가 아름다워지거나 변하면 우리가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탈피해야 할 때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환경과 가치관 속에서 다르게 자란다. 그러므로 각자 다양한 문화 속에서 살아온 상대와 나를 이해하고 내 자아를 살필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획일화된 연애 프레임 속에서 살아갈수록, 완벽한 존재가 되려 할수록 점점 공허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연애의 실패를 두려워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한, 사랑에 성공하기 위한 가장 완벽한 기술을 찾는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통한 자아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제 새로운 연대와 실패를 통한 에로틱이 필요하다. 진정한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는 제도화된 연애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 자아에 소속되어 꾸준하게 자아를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연애를 완벽하게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때 연애라는 이름의 자기감옥은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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