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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일상

불완전 복귀 소감 - “네, 여성의전화입니다.”

by kwhotline 2016. 5. 4.

불완전 복귀 소감

“네, 여성의전화입니다.”


현정 성폭력상담소 책임상담원


2016년 3월 7일 월요일 14:30


“네, 여성의전화입니다.”


사무실의 활동가들이 모두 월례회의에 들어간 시각, 사무실 전화벨이 정신없이 울립니다. 제가 전화를 받고 메모를 하는 동안 다른 전화벨이 울리고, 실습 선생님이 그 전화를 받아 메모를 하고 끊기 무섭게 다른 전화가 웁니다. 상담원교육에 대한 문의, 여성인권영화제 상영작 섭외 문의, 각종 용건과 연락처를 받아 적습니다. 지부 활동가, 상담소가 지원하는 사건의 피해자에게는 넉넉잡아 다섯 시쯤에는 회의가 끝날 것이라고 전합니다. 상담을 받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는 분에게는 이쪽은 사무실이라고 말씀드리고 상담 전화번호를 안내합니다. ‘넉넉잡아’ 다섯 시에 끝날 줄 알았던 회의는 다섯 시를 좀 넘겨서야 끝이 납니다. 2층에서 회의를 마치고 내려온 활동가들이 각각 화장실에 가고,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신 후, 다시 자리에 앉습니다. 분명 퇴근시간이 지났는데 활동가들은 그제야 업무를 시작하는 모양새라서, 먼저 퇴근한다고 인사하기가 미안해집니다. 제가 활동하던 2008년에도 그랬듯이 전체 회의가 있는 월요일이면 항상 반복되는 사무실의 풍경입니다.


네, 여성의전화입니다.


저는 2008년 3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약 3년간 여성의전화 본부의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했습니다. 이런저런 전화에 응대하고, 상담원 선생님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면접상담을 하고 나면 상담일지와 의견서를 쓰는 업무는 고스란히 저녁으로 밀렸습니다. 사무소 회의나 연대단체들과의 회의, 재판 참관이라도 있는 날은 더했지요. 고단한 날이 많았지만, 성폭력피해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다시 살아나는(생존자가 되는) 과정을 직접 보는 것은 활동가이기에 누릴 수 있는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열정만으로 ‘잘’ 활동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아마 비슷한 이유로 누구는 여성학을, 누구는 사회복지학이나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러 대학원에 갔을 것입니다. 저는 법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호기롭게 활동을 그만둔 것이 무색하게, 한 번의 낙방 후 그 다음해인 2013년 3월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였습니다. 과도기인 로스쿨제도 하에서 학생들은 크게 네 부류로 분류됩니다. 사법시험 2차 경험자/사법시험 1차 준비경험자/법학 전공자/비법학 전공자. 가장 비천한 신분은 저와 같은 비법학 전공자입니다. ‘엄정한 상대평가제’는 수강생들을 A+부터 D+까지 의무적으로 구분하도록 했고, 변호사시험성적을 공개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기 전까지 학벌과 학교 성적만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유일한 지표라고 여긴 로스쿨생들은 성적관리에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습니다.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우물 안 개구리로서의 시간을 버티게 해준 것이 여성의전화에 대한 그리움과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할동에 대한 기대였다고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상담실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네, 여성의전화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의 긴장감을 어서 빨리 다시 느끼고 싶었습니다.




과거는 미화된다?


마침내 올해 초에 변호사시험을 치르고, 합격자 발표가 나기까지 노는 동안 여성의전화에서 일주일에 이틀을 책임상담원으로 일하기로 했습니다. 처음 출근하던 3월 4일, 학교에 있는 동안에도 가끔 회상했던 출근길은 기억과 많이 달랐습니다. 사무실 앞 경사로는 훨씬 더 가팔랐고 나무문 뒤의 계단은 더 높았으며, 그래서 사무실에 들어설 때에는 예상보다 더 숨이 찼습니다. 기억이 왜곡되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공부를 하는 동안 체력이 떨어진 것일까요? 오랜만에 만나는 활동가들, 그리고 처음 뵙는 활동가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사무실의 전화기는 새것으로 바뀌어서 전화를 당겨 받고 돌려주는 방법부터 배웠습니다. 첫날은 상담 전화를 받을 엄두도 못 냈습니다. 판례의 법리가 제 논리인 것처럼 튀어나오도록 훈련하느라 여성주의적 감을 죄다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일이 생길까봐 두려웠지요.


"1년을 쉬고 돌아왔는데 상담 전화를 딱 받는 순간, 그냥 주말 쉬고 출근한 것 같더라고."


다행히도 상담전화를 받을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헌신적으로 상담실을 지켜주시는 많은 상담원 선생님들 덕분에 상담실이 비는 시간이 적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무한정 피할 수는 없어서, 드디어 어느 날 저는 상담실에 뛰어 들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첫 번째 전화는 허둥대다가 면접상담을 연계하고, 두 번째 전화는 잠깐 이야기를 듣고 나서 법률상담을 연계한 후, 세 번째 전화에서는 조금 여유가 생긴 느낌이었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니 이문자 선생님, 배인숙 선생님, 유리화영 선생님이 점심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화영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듣더니 웃으면서, “내가 안식휴가 쓰고 사무실 일은 다 잊고 쉬고 왔잖아요. 그렇게 1년을 쉬고 돌아왔는데 상담 전화를 딱 받는 순간, 그냥 주말 쉬고 출근한 것 같더라고요”라고 하시더군요. 여성폭력의 현실이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화영 선생님이 베테랑이어서 바로 ‘활동가로서’ 복귀하실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아직 미생이지만


저는 3월이 다 지나가는 지금도 상담전화와 이메일에 쩔쩔맵니다. 더 잘 해보겠다고 공부를 하고 왔는데 오히려 예전만 못한 느낌입니다. 가만히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양이가 된 기분도 듭니다. 가끔 고양이 손이나 보태면서 말이지요. 로스쿨졸업생들은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 미생입니다. 무엇이든 다른 일에 정신을 쏟지 않으면 바들바들 떨면서 결과를 걱정하기 십상입니다. 한동안 바들바들 떨다가, 어차피 이제는 내 손을 떠난 문제라는 걸 새삼 깨닫고 겨우 다른 일에 정신을 쏟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떨어지고 다시 공부를 하게 되더라도, 우물 밖으로 나와 잠시나마 여성의전화에서 보내는 이 시간이 에너지가 되어 줄 것 같습니다. 에너지가 되어 주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부디 올해 무사히 합격해서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네, 여성의전화입니다”라고 전화를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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