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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여성 정치인에 대한 기대

by kwhotline 2016. 5. 3.

여성을 위한 정치는 있는가



한국여성의전화 6기 기자단 김나율



여성 정치인에 대한 기대


 2013년 4월 8일, 이날은 어떤 이에는 탄식과 애도를 남긴 날이기도 했으나 페미니스트와 성 소수자들에게는 경탄의 축배를 들게 한 날이었다. 바로 영국 최초의 보수당 출신 여성 총리인 마거릿 대처가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영국 총리 사상 가장 긴 11년 6개월이라는 임기를 파란만장하게 보내며 뇌졸중으로 숨을 거둔 날이기 때문이다. 특유의 대담함과 탁월한 지도력으로 영국병을 이겨낸 여왕, 대처리즘, 그리고 철의 여인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찬사받는 마거릿 대처. 그녀는 가난한 식료품점의 딸로 태어나 혼인, 출신, 집안의 도움을 받지 않았고 평민의 신분으로 당원에서부터 총리까지 이르렀다. 또한, 토론 당시 여성 정치인에게 기대하던 우아한 기품보다 남성에게서 볼 수 있었던 강경하고 치밀한 자기주장, 카리스마적인 면모로 남성사회의 유리천장을 깨부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많은 여성이 그녀에게 여성 인권 신장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장 주의 체제로의 변화와 정부축소, 공기업의 민영화 등으로 인플레이션을 바로 잡고 소위 영국의 경제적 재정위기라고 불리던 영국병을 이겨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여성이기 이전에 뼛속 깊은 가부장제의 보수적 인물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살림과 일을 한꺼번에 짊어져야 했던 여성들에게 필요했던 국영 탁아소를 폐지했으며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의 권리에는 취약했고 반 동성애적이었으며 스스로는 강력한 여성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현해냈으나 “페미니스트는 나를 싫어한다. 나는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페미니즘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독이다.”라고 표현하며 페미니스트 자체를 혐오한 인물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대다수에 존경을 받으며 전 세계의 여성 정치인들에게 영향을 주는 총리라는 것은 다소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최초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는 마거릿 대처와 종종 비교되곤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평소 마거릿 대처를 존경하고 그녀를 정치 인생의 롤 모델로 삼겠다고 발언해왔다. 그래서일까, 기사로 공공연하게 발표되는 박근혜의 패션 정치는 마거릿 대처가 색상과 패션, 액세서리로 자신만의 정치적 기호를 표현하던 것과 닮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8대 대선에서 ‘여성혁명시대’나 ‘여성리더십’, ‘최초의 여성대통령’등 성별론으로 자기 어필을 했으나, 취임 후 진보 여성단체가 발표한 여성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여성인권 정책은 아직 실효성과 장기적 전망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또한, 무책임한 한일 위안부 협상 행보와 반 동성애적 발언으로 여성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단순히 성별이 여성이라는 이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은 지난 2015년 10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전국여성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화여대에 방문한 모습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이날은 여성을 위한 ‘대회’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질서없는 무력진압시위의 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여성 정책 없는 여성 대통령, 앙꼬 없는 찐빵 격인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여성론이라는 수가 빤히 보이는 상태에서의 이화여대 방문은 학생들에게도 당연히 달가울 수 없었다. 학생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학교 방문을 완강히 거부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 학교 내에는 사복 경찰이 배치되고 진압과 폭력 속에서 경찰과 학생이 전면 대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한 나라의 여성 대통령은 결국 후문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여성에게 오히려 무관심했던 철의 여인을 답습하고 여성 상징만을 빌리며 정치를 꾀하려는 여성 대통령과 이미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 정치, 남성 주류정치, 사회적 소수자의 배려 없는 정치에 희망은 과연 있을까. 최근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앞으로의 희망을 볼 수 있었을까.



제 20대 국회의원 선거, 여전한 남성주류정치


 2016년 4월 13일, 제20대 국회의원선거가 대한민국의 하루를 들썩이게 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 공천 문제로 내내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소수정당과 정당정치 활성화, 여성 등의 정치적 소수자를 보호하는 민주주의 실현의 장치인 비례대표제는 다른 선진국들이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오랫동안 갖춰온 제도이다. 비례대표제는 국민 의사 반영 정도가 높지만, 우리나라의 불비례성은 20%를 돌파할 정도이며 그 반영 정도가 30위를 밑도는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대다수 55세 이상 명문대 중년 남성, 남성권력과 남성적 시선을 지닌 남성 정치인들이 모인 여야에서 다투어 비례대표제 축소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적은 투표율로도 당선이 가능한 지역구 국회의원 자리가 비례대표제로 위태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비례대표제 반대는 국민의 자유선거를 억압하고, 나라를 위한 일꾼이 아니라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한 일꾼임을 시인하는 셈이다. 또한,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36명 후보 중 여성은 19명밖에 되지 않았으며 그들은 매 홀수 번호에 여성을 추천해야 한다는 조항을 어기고 15번에 남성 후보를 선택했다. 새누리당은 당내 보수혁신위원회가 결의안을 발표해 여성을 비례대표에 60%로 할당하는 의무할당제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했으나 형식만 지키고 여성을 후반부에 배치하는 등의 꼼수를 부렸다. 그러나 여야는 이 사실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남성주류의 정치프레임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특히 20대 총선에는 여성혐오와 성 소수자 혐오 발언을 한 정치인들이 출마하기도 했는데, 이 발언에 아무런 사과나 제재 없이 출마한다는 것은 그만큼 현존하는 젠더 문제에 대한 보수적 시선과 무관심, 약자를 대변해야 할 여야의 실효성보다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만연한 행태가 쉽게 사라지기 힘들다는 뜻이다. 새누리당 의원 김무성은 "애 많이 낳는 순서대로 여성 비례 공천을 줘야 한다" "애기 안 낳으신 분들은 잘릴 것", 이노근은 "동성애는 인류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다","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김을동은 "여성이 너무 똑똑한 척을 하면 밉상이다" "약간 좀 모자란 듯 표정을 지으면 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영선은 "차별금지법과 동성애법, 이슬람과 인권 관련한 법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동성애법은 자연과 하나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법이다"라고 각각 여성, 성 소수자 혐오 발언을 서슴없이 했다. 정의당도 결코 여성 혐오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인디 밴드인 중식이 밴드와 총선 테마송 ‘여기 사람 있어요’를 함께했으나 중식이 밴드는 연이은 여성 혐오 가사로 뒤늦게 물의를 빚었고 작사, 작곡을 맡은 정중식 씨는 ‘나는 남자라서 여성의 입장을 잘 모른다, 죄송하다’는 다소 의미가 모호한 해명 글을 SNS에 게재해 더 큰 논란을 만들었다. 또한, 이 사태에 대해 당내 갈등이 일어났으나 몇몇 당원들은 사건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정의의 실현이라는 당의 기본 슬로건을 무색하게 했다. 20대 총선은 마무리되었으나 여성들의 맹렬한 참정권운동으로 얻은 선거권의 가치가 값진 만큼 여성 유권자들을 소외시키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아쉬울 수밖에 없다. 현재 페미니즘이 사회적 화두이자 정치적 화두인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여성주의에 대한 섬세함과 검열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금씩 보이는 희망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희망은 보인다. 지난 19대 총선과 비교해서 20대 총선의 지역구 여성의원은 19명에서 26명으로 7명이 증가한 역대 최대 수치이다. 여성 비례대표가 포함된 숫자는 51명으로 19대 총선보다 6명이 더 많은 수치로 집계되었다. 전체 지역구 국회의원 중 여성의원 비율은 10.3%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또한, 새누리당의 테러방지법에 대한 여야 갈등 속에서 시작된 야당의 필리버스터 기간에는 ‘여성 정치인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동안 남성 정치인들에게 가려진 여성 국회의원들을 수면 위로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필리버스터에는 여성의원이 절반을 참여했으며, 남성 못지않은 우먼파워와 탄탄한 연설로 찬사를 받은 의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치가 남성의 영역이라는 숱한 편견을 깨준 것이다. 또한, 페미니즘 돌풍까지 합세해 여성 유권자들이 여성 정치인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필리버스터에서 한 연설로 유권자들에게 정치인으로서 이름을 각인시키고 20대 총선까지 정치적인 이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필리버스터 연설에서 “10여 년간 판사로 지낸 자신이 봐도 이 법은 법이 아니다.”라고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어조로 2시간 34분 동안 연설을 진행하며 뭇 여성들에게 추다르크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이 필리버스터 발언에 힘입어 그녀는 20대 총선 결과에서 현재 헌정사상 최초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 선출직으로만 5선을 달성했다. 여성과 성 소수자 인권 분야에 주력해 온 변호사 출신 진선미 의원은 최근까지 음란물 웹 사이트 ‘소라넷’의 반대를 촉구하며 여성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았고 이번 필리버스터에서 “국정원이 왜 누구를 의심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9시간 14분 동안 차분한 어조로 호소했으며 이번 총선에서 43.8%의 득표율을 얻으며 강동(갑) 지역구 최초 여성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은 “우리는 필리버스터가 끝난 이 자리에서 다시 싸울 것”이라는 발언으로 살아있는 정의에 대해 강력하게 연설했으며 50%가 넘는 높은 득표율로 고양(갑)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장장 10시간 18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치르며 필리버스터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수많은 20대에게 희망을 건넸던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은 1위와 약 3% 차이로 2위에 머무르며 아쉽게 낙선을 했으나 수많은 여성 유권자의 본보기가 되었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정당이자 남녀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녹색당의 국회진출은 이번에 아쉽게 실패했으나, 앞으로 이겨내서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된 지는 7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또한, 아직 구조적으로 여성정치인이 설 자리가 부족하고 자연스럽게 여성을 위한 정책은 부족한 상태이며 그러므로 여성들의 정치 참여는 여전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는 남성의 몫이며, 정책은 남성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린 이상 한국 정치는 젠더 문제를 절대 극복할 수 없다. ‘여성을 아는’ 진정한 여성 정치인이 필요한 때다. 물론 마거릿 대처나 박근혜처럼 여성의 얼굴을 하고 남성성의 주류정치를 하는 인물도 있고, 남성 정치인이 여성에 대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016년 주요 도정 운영 방향으로 ‘여성과 소수자 인권 보장 및 양성평등 정책 진전’을 꼽았으며 여성의 관점에서 모든 정책을 재정비하겠다고 밝히며 최근에는 페미니즘 도서를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별 자체가 아니다. 그러나 남성이 자신이 지닌 시각을 돌려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여성이 위협받는 사회에 대해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며, 여성은 고질적인 젠더 문제 속에서 끊임없이 피해자의 역할을 감내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남녀 구분 없이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을 아는 여성 정치인이 필요한 근본적 이유는 정서적, 신체적 조건이 비슷하며 여성으로서 겪는 수많은 불평등한 상황, 남성의 사회적 우위 독점을 같이 인지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온다. 수많은 여성유권자는 젠더 문제를 해결해줄 여성 정치인을 기대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이 시대 속에서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지만, 이번 총선은 부족하게나마 여성을 위한 길을 내주었다. 그러나 정치는 정치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처럼 유권자들이 한국 정치에 꾸준히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세를 보일 때 여성인권도 한 발자국씩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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