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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칼럼

그녀의 이름은 가능성

by kwhotline 2016. 3. 2.

독박골에서

 

란희 본회 사무처장




2015년은 아마도 한국의 여성운동계에서 어떤 특별한 시점으로 (나중에라도) 평가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를 하고, 국립국어원의 페미니스트에 대한 정의가 세간의 도마에 오르고, SNS상에서는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선언이 속출하고,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한 거울로 읽히는 소위 메갤(메르스갤러리)”이 등장하였으며, “연대는 입금으로라며 여성단체에 회원가입을 하는 사람이 늘었고, 그간 잘 드러나지 않았던 데이트폭력피해를 당사자들이 스스로 연이어 피해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증했다. 몇 가지 빼놓은 일도 있겠으나, 적어도 상반기에 손에 꼽을만한 현상만 이 정도이다.

 

사실, 10년이 넘게 한국에서의 여성운동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소위 3대 여성인권법으로 불리는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후부터는 제도가 모든 것을 해결할 테니 더 이상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처럼, 관련 예방교육이 의무화되었으니 국민 모두가 성평등과 반여성폭력을 상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처럼, ‘성공한 여성몇몇이 조명을 받자 마치 모든 여성들이 성공한것처럼 인식되면서, 여성운동은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진부한, 그래서 필요 없는 운동이 된 것처럼 취급되었다. 자연스레 대학에서는 여성학과가 폐지되고, 여성학강좌들은 폐강되었다. 이에 관심을 갖는 젊은이들의 숫자도 줄어들었으며, 여성단체들은 단체의 지속가능성을 원초적인 차원에서 끊임없이 화두로 삼아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직도’, ‘당연하게달라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여성운동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이, 여성에 대한 혐오는 그 기세를 확장하여, 혐오 표현을 일상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혐오표현의 일상화는 차별의 일상화, 폭력의 일상화와 연결된다. 그래서 일상적인 혐오와 차별과 폭력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2015년 상반기의 일련의 현상들이 더욱 특별한 건지도 모르겠다.

 

최근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저자 리베카 솔닛은 그의 이름은 특권’, ‘그녀의 이름은 가능성이라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의 이야기는 예의 진부한 옛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는 이야기를 바꿀 가능성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속에는 우리 모두가 등장하며, 그 이야기는 너무나 중요하고, 우리는 이야기를 지켜볼 뿐만 아니라 직접 써나가고 들려주기도 할 것이다. 앞으로 몇 주, 몇 달, 몇 년, 몇 십 년에 걸쳐서.”

 

생각해보면, 저절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오래 전부터 가능성을 이야기했던 그녀들의 이야기 위에 2015년이 있다. 남은 2015년 위에, 그리고 또 계속되는 날들에도, 새로운 이야기들이 쌓이고, 또 쌓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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