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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간통죄 폐지, 그 뒤에 남겨진 것들

by kwhotline 2016. 2. 25.

간통죄 폐지

그 뒤에 남겨진 것들


이동화 한국여성의전화 전화상담회원

 



이제 어쩌나? 나에게 남은 마지막 무기였는데…….”

 

간통죄 폐지 이후 내담자에게서 들은 말이다. 내담자는 울먹였다. 그녀는 결혼 30년 동안 남편의 폭언폭력외도를 참고 견디면서 살아왔다고 한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구박을 해도, 이혼 과정에서만큼은 간통죄로 고소해서 개망신 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단다. 내담자에게 간통죄는 일종의 무기 혹은 힘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힘이 쭉 빠져 버렸어요. 나 같은 사람은 어찌 살라고. 돈 있고 잘난 여자들은 괜찮겠지만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녀는 이제 남편이 할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더 뻔뻔하게 굴 것이라고, 더 큰 소리치며 망나니짓을 하고 다닐 거라 말했다. 여차하면 이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걱정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간통죄를 폐지한 국가에 대해 원망을 토로했다.

 

가정폭력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며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던 다른 내담자는 정말 외롭고 힘들어서 그 남자를 만났다고 했다. 아이에게 미안하고 남편에게 죄책감을 느껴서 정리했는데 그녀의 남편이 이를 알게 되었단다. 결국 그녀는 간통죄로 이혼하게 되었고, ‘돈 한 푼 없이쫓겨나 아이들도 못 보게 됐다고 했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직장까지 잃은 그녀는 너무나 억울하다고 말했다.

 


간통죄는 왜 문제적인가

 

간통죄는 가정의 기초인 혼인 제도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이 법을 선량한 성도덕, 일부일처주의, 혼인제도의 유지·가족생활의 보장 등을 위해 유지해왔다고 한다. 이는 국가가 개인의 성생활과 도덕성, 부부관계, 가정 유지 등에 간섭해서 벌을 주겠다는 의도나 다름없었다. 또한 간통죄는 선량한 성도덕혹은 결혼한 부부가 지켜야 할 상호간의 신뢰와 성실성을 국가가 규정짓고, 이 틀을 벗어나면 철퇴를 가하던 위험한 기획이었다.

 

그러나 지난 226, 간통죄는 62년 만에 폐지되었다. 간통죄는 국민들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제한하고, 기본권인 성적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침해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는 간통죄의 처벌을 통해 혼인제도와 부부간의 정조 의무를 강요할 수 없으며, 더 이상의 국가권력이 개인의 성생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의 의지를 존중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법은 1%의 낮은 실형 선고 비율로 처벌이 미비하였고, 지난해 간통 혐의로 기소된 892명 중 구속된 피고인이 단 한 명도 없는 등 억지로 유지되어온 유야무야한 법이었다.

 


간통죄 폐지를 환영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 심각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보면서 사회적 약자로 살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여성들이 있다. 경제력이 동등하지 못해 의존적인 삶을 살아야 했고, 그렇기에 자신을 희생해 결혼 생활을 유지해 온 사례가 많다. 또한 이들에게는 이혼이라는 방법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따라주지 않기 마련이다.


첫 번째 상담사례에서 보듯, 어떤 내담자는 오랜 세월을 참고 또 참으며 지냈다. 언어적·경제적 폭력 및 정서적 괴롭힘 등은 차치하더라도 외도 행위에는 처벌이 가해지길 원한다고 했지만, 간통죄가 폐지된 후로 남편이 도리어 큰 소리 치는상황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 경우에 내담자에게 결혼 생활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스스로의 인생이 소중하고 가치 있다면 어찌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상담사례였다. 또한 앞으로 내담자가 상황을 잘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들었다.

 

두 번째 상담사례에서는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들었다. 누구라도 그럴 수 있었을, 한 번의 실수로 그 간 내담자의 고생과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부부간의 신뢰와 성실성이 국가권력에 의해 규정되는 상황에서, 그녀의 결혼생활 유지를 위한 노력은 일방적으로 무시된 결과인 것이다.

 


간통죄 폐지에 따른 보완이 필요하다

 

간통으로 인한 형사 처벌은 없어졌지만 민사적 절차를 통한 보완을 기대한다. 결혼 제도 안에서 파탄의 귀책사유가 있는 배우자에게 민법상 강력히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이혼 시 위자료 지급의 방식이 기존의 최대치에서 더 유연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또 양육권이나 양육비의 미지급 등에서도 기존의 안보다 더 강력한 조치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간통이나 외도의 문제를 떠나 큰 틀에서 혼인 파탄의 책임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에 대한 국민들의 합의와 정서도 매우 중요하며, 실제로 공평하게 진행된 사례가 등장하길 바란다.

 

결혼을 통해 부부들이 합의한 도덕적, 윤리적 책임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만족스럽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간의 불균형한 권력관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과 책임이 필요할 것이다. 간통죄가 폐지된 이 시점에서, 국가는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상황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법적인 보호 장치를 만드는 것이 국민을 보호하는 길임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여성들이 더 당당하게, 힘 있게 자신의 역량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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