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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이슈/성명·논평

윤필정씨 선고 재판을 다녀와서

by kwhotline 2016. 2. 24.

윤필정씨 선고 재판을 다녀와서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윤필정씨를 만나러 가는 구치소에는 단풍이 빨갛게 들어 있었다. 그날은 윤필정씨의 선고재판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함께 걷던 윤필정씨의 딸 수지는 벌써 일 년이 지났다고, 구치소를 다니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고 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계절의 변화를 몰랐는데 구치소를 다니다 보니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짙은 녹색의 나무을 보고, 가을에는 단풍이 드는 것을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고 했다. 수지는 그런 계절의 변화를 앞으로 1년이나 더 보아야 한다.

 

윤필정씨는 지난 51심 재판에서 가정폭력으로 인한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해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우리는 1심 판결에 수긍할 수 없어 항소 했고, 검사측은 너무 가벼운 처벌이라며 항소를 하였다. 2심 재판은 8월부터 시작되었다. 1심 판결에서 이혼 등 가정폭력을 벗어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윤필정씨가 그동안 경찰, 법원 등에 찾아가 가정폭력에 벗어나려 했던 노력들에 대해 증인심문을 통해 입증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 윤필정씨의 2심 재판을 알렸다. 오마이뉴스와 다음 뉴스펀딩, 한겨레21 등 언론에 윤필정씨 사건을 적극적으로 알려 윤필정씨의 행위가 정당방위임을 알리고 재판부에 압력을 가하였다.

 

2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이동화, 김윤정 회원을 비롯한 많은 회원들이 재판을 참관하며 윤필정씨에게 지지를 보냈다. 윤필정씨는 2심 재판 최후 진술에서 지금까지 누구도 내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고, 어디에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몰랐는데 한국여성의전화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고, 자신에게 많은 지지를 보내준 여성의전화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전하였다.

10242심 재판의 선고가 있던 날. 법원에서 만난 수지는 한층 수척해있었다. 수지는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고, 그리고 혹시 엄마가 나올 수 있으니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리하였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검사와 변호인의 쌍방 항소를 모두 기각하였다. 고등법원 재판부는 범행이 있기 3일 전 피해자가 피고인의 목을 노끈으로 조르고 식칼을 피고인의 목에 들이대기도 하는 등 육체적이고 직접적인 위협을 했지만 결국은 살해 범행이 일어나지는 않았다피해자의 이러한 행위는 피고인을 괴롭히기 위한 수단 일뿐 실제로 피해자가 피고인을 실제로 살해할 마음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자리를 회피하거나 나중에 해결하고자 했다면 큰 사고 없이 상황이 종결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가해자 남편이 윤필정씨와 함께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며 자신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 측면이 엿보인다는 점과 남편의 가정폭력이 우울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고 좀 더 적극적으로 상담치료를 받았다면 이런 파국은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과 윤필정씨가 상담을 받은 것은 단 한번뿐이었고, 상담에서 남편이 무섭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윤필정씨는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밤새도록 맞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남편이 상담한 노력만 인정하고 그 이후 남편이 윤필정씨를 폭행한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날 재판을 지켜보았던 수지와 회원들 모두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수지는 눈물을 흘리며 판사님들이 가정폭력으로 인한 공포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폭력을 행하는 아버지 입장만 이해하는 것 같다며 재판부를 원망하였다. 2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윤필정씨는 사건 전부터 앓아오던 자궁근종으로 인해 하혈을 하는 등 몸이 많이 좋지 않아 구치소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다. 재판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날 판결문 어디에도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윤필정씨 2심 선고재판으로 가정폭력에 의한 정당방위 인정은 또 미뤄졌다. 마치 대본이라도 있는 듯한, 한결같은 내용의 정당방위 사건 판결에 우리는 분노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언제쯤 여성폭력에 대한 전향적인 판결을 내릴까? 판결이 있은 후 윤필정씨와 의논하에 대법원 상고를 결정하였다. 대법원 상고에서는 전향적인 판결이 나기를 기대해 본다. 모든 회원들과 시민들이 윤필정씨 사건에 대한 관심과 지지의 끈을 놓지 않고 지켜봐주었으면 한다.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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