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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합니다.

by kwhotline 2016. 2. 23.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합니다.

 

저녁노을| 베틀여성모임



* 베틀여성모임은 1987년 가정폭력피해여성들의 피난처인 쉼터가 생긴 이후, 쉼터를 퇴소한 생존자들의 자조모임으로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격월로 모여 집단프로그램, 문화체험 등을 진행하며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고 있다.


 

지금도 가슴 시린 5년 전 그 겨울날

  2009년 끝자락, 몸도 마음도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남편의 폭력으로 얻은 상처와 두려움으로 갈 곳이 없었던 나는 벼랑 끝에서 쉼터를 만났습니다. 부모님도 동생들도 있었지만 먼 이방인들이었고, 차마 동생의 안전까지 헤칠 수는 없어 반신반의하며 여성의전화에 전화를 하였고,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쉼터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생활에 불안했고, 긴 기간 피폐해진 깊은 상처로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개인상담과 집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쉼터 가족이 되었고, 늘 웅크린 채 여유 없이 살았던 내 삶을 돌아보며 많이도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음의 상처는 서서히 치유되었고, 쉼터의 도움으로 이틀에 한번 한의원에 다니며 남편의 폭력으로 골절되었던 왼쪽 손가락 두 개도 치료하였습니다. 모든 걸 버리고 쉼터로 들어올 때 마음으로 포기하려했던 방송통신대학교를 선생님들의 격려와 지지 속에서 끝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졸업장을 받아오던 날, 쉼터의 모든 가족들이 자신의 일인냥 축하하고 안아주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나의 삶은 긍정과 희망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내 인생의 황금기

  나는 자립을 하기 위해 이를 악 물고 공부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한자 3급 자격증을 따고 수학 지도사 교육과 리더십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독서논술지도사 자격증도 땄습니다. 그리고 쉼터의 지원으로 가정폭력상담원교육도 이수하였는데, 그 교육을 받으면서 나는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현장 활동가들의 강의는 열정적이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교육받은 날은 쉼터 가족들에게 그날 배운 내용을 설명해주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여성의전화 같은 단체에서 일하며 상담도 하고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개인상담 선생님이 내게 물었습니다. 요즘 자신의 생활을 무엇이라 표현하고 싶냐고. 나는 주저 없이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답했습니다. 세상에서 유일한 내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던 쉼터는 친정보다 더 편안하게 내 영혼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유일하게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상처투성이였던 내 마음을 보듬고, 어루만져주었습니다. 쉼터의 6개월은 참 빨리도 흘러갔습니다.

 


도움 받던 사람에서 도움 주는 사람으로

  쉼터에서 나올 때 다시 두렵고 불안해진 마음은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서서히 안정되어 갔습니다. LH공사와 구청을 뛰어다니며 가정폭력피해자에게 우선 입주자격이 주어지는 국민임대주택도 받았습니다. 비록 수도권의 외진 곳 작은 아파트였지만 나만의 보금자리였고,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나는 쉼터에서 받았던 선생님들의 따뜻한 마음과 혜택들을 잊을 수가 없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습니다. 나는 쉼터 선생님들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전문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사이버로 사회복지사 2급 자격을 취득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장 돈이 필요했던 나는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기가 어려웠고, 그렇게 4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도 내 가슴에는 나처럼 상처 입은 여성들에게 이제는 위안이 되고 디딤돌이 되고 싶다는 꿈이 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8개월 전, 마침내 기회가 왔고 나는 가정폭력 쉼터 상담원이 되었습니다. 가슴 시리던 5년 전 그 겨울날, 절망 끝에서 쉼터를 찾아가던 나의 모습을 지금 여기에서 만납니다. 내 지난 삶과 너무나 닮은꼴인 그들에게서 아픔과 슬픔이 느껴질 때면 내 마음도 너무 아파오지만, 나는 따뜻한 마음과 격려와 사랑으로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내가 결국 꿈을 이루어왔듯 그들도 당당히 설수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켜내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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