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쉼터인터뷰] 지수샘,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by kwhotline 2015. 2. 13.

지수샘,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 가정폭력피해생존자 쉼터, 오래뜰 가족 인터뷰 -

 

 

 

2월 2일 저녁 6시반, 사무실에서 지수샘을 기다렸습니다. 늘 궁금하고 마음 가던 우리 오래뜰 식구들...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피해생존자 쉼터 오래뜰 가족분과 얼굴을 마주하고 천천히 이야기할 기회는 쉽지 않기에 설렜습니다.

 

밤이면 영하 13도를 달리기도 하는 날들이 겨울 한가운데로 느껴졌지만 벌써 입춘이 내일모레였죠. 겨울이 지긋지긋해지는 2월에는 봄이 그립기 마련. 그런데 따뜻한 봄은 느껴지는 것보다 늘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며칠 후 오래뜰을 퇴소하는 지수샘의 봄은 바로 지금 이곳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인터뷰이: 지수 (오래뜰 가족)
인터뷰어/글: 슬기 (한국여성의전화 기획홍보팀)
함께한 사람: 수리(오래뜰 활동가)

 

 

 

슬기: 안녕하세요 선생님. 추운데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수: 괜찮아요. (웃음)


슬기: 그동안 정들었던 오래뜰(이하 뜰) 식구들과 헤어져 퇴소하신다니 시원섭섭하시겠어요?


지수: 가족들 못보는 건 아쉽지만, 가정폭력피해자 주거지원 받아 제 보금자리가 생긴 게 좋아요. 또 베틀모임도 있으니까.(웃음)

 

베틀모임은 오래뜰 퇴소자들과 함께 만나는 자조모임입니다. 모임을 통해 계속 서로 힘을 주고 받고 정보도 나눕니다.

 

 

 

 

아주 특별한 기부금

 

수리: 지수샘 손 볼래요? 류머티즘으로 여기가 튀어나왔어요.

 

뜰 활동가 수리샘의 따뜻한 눈빛이 지수샘의 손을 향했습니다. 관절염에 오래 서 있으면 힘들지만 그럼에도 식당일을 하며 자립 의지를 키우셨다고요.

 

지수: 근처 낮은 산에 오르는 데 1시간 반이 걸렸어요. 무릎이 아파서... (웃음)

 

지수샘은 뜰 퇴소를 하며 한국여성의전화에 오십만원이라는 큰돈을 기부했습니다. 그 사연을 아는 사무실 사람들은 깊이 감사해하고 또 놀라워했습니다. 보통 사람들 모두에게 오십만원을 선뜻 기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만 이 기부금은 좀더 특별했습니다. 지수샘은 뜰에 있는 동안 한 식당의 일을 하며 계속 절약해 오백만원을 모았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자신을 위한 든든한 후원금인 그 소중한 돈의 십퍼센트를 한국여성의전화에 기탁하신 것입니다.

 

지수: 제가 교회를 다니는데, 교회에 원래 십일조를 하잖아요. 그래서 그러려고 했는데 갑자기 여성의전화에 십일조를 하고싶더라고요. 제가 받은 게 많아서. 또 한국여성의전화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열심히 힘들게 일하시는지 아니까.

 

수리: 지수샘은 마음이 참 따뜻하세요. 뜰 가족 중에 어린아이들에게도 잘 대해주시고, 맛있는 것도 해주시고. 음식솜씨가 정말 좋으세요. 또 차분하시고.

 

 

 

 

어떻게 처음 쉼터에 오시게 됐나요?

 

지수: 어느날 남편이 길에서 사람들이 보는데도 폭행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즈음에 제가 1366 긴급전화로 연락했고 여성의전화 쉼터까지 연결돼 오게됐어요. 너무 다행이었죠.

 

1987년 시작된 한국여성의전화 쉼터는 한국 최초의 가정폭력 쉼터입니다. 여성주의 시각으로 여러 가지 치유 프로그램과 소송 및 의료 지원 등 가정폭력피해생존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위해 활동하며 함께합니다. 또 쉼터 가족들(입소자)과 활동가의 평등한 관계, 내담자 주체성을 중시합니다. 쉼터에 첫 발을 들여놓을 때 많은 가족들이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수리: 지수샘은 이혼소송이 순조롭게 빨리 진행됐어요. 가해남편에게 요구한 게 별로 없는데다 재판부가 어렵게 살아온 지수샘 입장을 받아들여 화해조정으로 결정을 내려줘서...

 

무사히 끝난 이혼 과정도 새롭게 얻은 보금자리도 지수샘의 앞으로 삶에 힘을 주는 것들입니다.

 

 

 

 

쉼터에서 하신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뭔가요?

 

지수: 제주도에 ‘자아여행’ 갔던 게 제일 좋았어요. 많은 걸 보게 된 계기였죠.

 

쉼터에서는 매년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해서 ‘자아여행’ 프로그램으로 치유캠프를 떠나는데, 쉼터 가족들이 두 달 전부터 기획팀을 꾸려 주체적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그림을 그려냅니다.

 

지수: 제가 성격이 모날 때가 가끔 있어요. 그런데 뜰 가족들이 그걸 참 잘 받아줘요. 그런 경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드물었고, 참 고마워요. ‘나를 믿어주고 따라준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앞으로의 꿈,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지수: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반찬가게를 해보고 싶어요. 딸이랑 수다처럼 얘기해봤는데,  딸이 배달하고. (웃음) 내 몸 상태에 맞게 차근차근 해야겠죠. 혼자는 못해요.

 

슬기: 와. 사무실에서 앞으로 점심시간에 반찬만 배달 받아 밥 지어먹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지수샘 반찬가게 여시면 꼭 지수샘 반찬 먹고싶어요.(웃음)

 

지수: 좋죠. (웃음)

 

 

 

 


 시간을 많이 빼앗을 수 없어 30분을 예정했지만 시간을 훌쩍 넘으며 함께한 이야기들. 그래도 인터뷰가 끝나는 게 아쉽기만 했습니다.

지수샘 눈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고개를 처박고 볼펜으로 인터뷰 필기하는 것을 최소로 하고, 녹음기 사용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간략하게 담은 인터뷰가 됐는데요, 저는 지수샘의 흔들림 없는 눈빛과 푸근한 믿음이 마음에 남습니다. 수줍은 성격이지만 자분자분 자신의 이야기를 잘 꺼내주시던 선생님. 언젠가 방송국 인터뷰도 거절하지 않고 응한 적이 있다시는데, 그 용기는 상처에서 벗어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세상에 대한 믿음을 배우고 싶었고, 많이 부럽기도 했답니다.

 

지수샘,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