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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 활동/후기·인터뷰

한국여성의전화와 함께 달려온 나의 유쾌한 20년의 질주!!

by kwhotline 2012. 7. 4.

 

 

 

정춘숙(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내가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여성운동을 시작한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셈이다. 의욕이 앞섰던 서른 살에 여성의전화에 들어와 이제 나이 듦의 여유와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기는 쉰 살이 되었다.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때로 여전히 아무도 모르는듯 한 여성에 대한 폭력 현실에 좌절하기도 하고, 때로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여성의전화 활동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지난 20, 매일 매일이 숨 막힐 듯 바쁜 중에도 유쾌한 질주의 시간이었다.

 

바쁘지 않으면 여성의전화가 아닌 것 같았다. 하루가 48시간이어도 모자랄 만큼 일이 많았다. 특히 1994년부터 1998년까지의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운동기간은 수많은 토론과 몇 날 몇 일의 밤샘에도,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기쁨과 가정폭력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로 임신 중의 몸으로도 힘든 줄도 모르고 미친 듯이 내달렸던 시간들이었다.

 

여성의전화는 정말 놀라운 조직이다. 상담, 회의, 강의, 집회, 토론회, 바자회, 일일호프, 영화제, 출판기념회... 이 많은 일들을 우리가 다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될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우리가 하려고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가끔 사람들이 어떻게 그 긴 시간을, 한결 같은 열정으로 계속해 왔는가를 묻곤 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여러 요소들이 내가 여성의전화에서 오랫동안 일하게 해 준 것 같다.

나는 지난 20년간 여성의전화에서 끊임없이 성장 해 왔다.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것은 여성의전화의 특징이다. 여성의전화를 만난 모든 사람들이 늘 하는 얘기가 여성의전화를 만나서 성장했고 그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성의전화에서 나는 나의 콤플렉스들을 해결했고, 편견을 교정시킬 수 있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면서 갖게 되었던, 당시 운동권들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던 노동운동 중심성, 주변과 중심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을 여성의전화에 와서 벗었다.

 

개인적은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여성주의 원리는 여성이라는 존재로서의 를 돌아보게 했고, ‘여성의 가치와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알게 해 주었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든 활동은 귀하고 소중하며, 어느 위치에서, 누구의 관점으로, 무엇을 바라보는가가, 주변과 중심을 가를 뿐 그 위치는 언제나 바뀔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성의전화에서 활동하면서 여성주의라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고, 평등을 몸으로 실천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불평등한 여성 현실에 대한 분노, 나와 여성의전화를 믿고 자신의 어려운 이야기들을 해준 수천명의 내담자들, 이 불평등하고,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소명의식과 책임감들이 오늘까지 나의 활동을 가능하게 했던 요소들인 것 같다.

 

여성의전화의 현장성은 나를 매일 각성시킨다. 잠들지 말라고, 타협하지 말라고, 회유되지 말라고, 전남 순천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내담자의 눈물이,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나와 한길을 가는 그때의 소년 소녀들의 모습이, 때로 지치고, 때로 힘들어도 여성의전화의 활동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나의 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있었다. 늘 격려와 지지로 함께 해 주었던 여성의전화의 동지들, 언제나 나의 최대의 지원자였던 가족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나의 활동이 가능했다.

 

그동안 함께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 귀한 소식지에 나의 간단치 않은 20년을 쓸 수 있게 해준 후배들에게 감사하며, 이제 20년을 신나게 일한 활동가로서 앞으로 후배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다. 2013년 한국여성의전화는 30주년을 맞는다. 지나온 30년 보다 더 멋지고 더 훌륭한 30년을 보낼 한국여성의전화가 되길 기원하며, 나도 그 길에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모두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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